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 내용을 보는 미국 자동차 업계와 이를 대변하는 미 의원들의 불만은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는 수준이었다.
한두 가지 합의 조항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아니라 원점부터 다시 협상해도 절충이 어려울 만큼 인식의 격차가 큰 상태임이 드러난 것이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0일 워싱턴에서 한미 FTA 관련 업계 대표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청문회를 열었다. ITC는 미 의회 규정에 따라 FTA 서명 이후 90일 이내(한미 FTA의 경우 올 9월 이내)에 미 대통령과 의회에 분석 보고서를 제출하는 독립 기관이다.
이날 청문회에서 미 업계의 태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FTA 발효 시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은행 보험 영화 양돈업계, 그리고 한미재계회의 한미FTA재계연대 주한미상공회의소 등 경제인단체 대표들은 한미 FTA 적극 지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비준 반대를 촉구하고 나선 자동차 및 쇠고기 업계, 환경 및 노동단체 대표들의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았다.
하원의 FTA 주무 소위원회인 세입위 산하 무역소위의 샌더 레빈 위원장은 한국 정부는 모든 수입자동차에 경제적인 철의 장막을 쳐 왔다며 이래서는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없으며 반드시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70만 대를 팔았지만 미국은 한국에 4556대밖에 팔지 못했다, 한미 무역적자 110억 달러의 87%가 자동차에서 발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 수입자동차 점유율은 40%가 넘는데 한국의 수입자동차 점유율은 3.6%로 가장 밑바닥이다 같은 온갖 통계도 제시됐다.
스티븐 비건 포드자동차 해외정부 부문 담당 부사장은 쌓인 한을 토해내듯 구구절절 한국의 자동차 시장 상황을 비판했다.
한국에 진출한 게 12년 전인데 지난해 고작 1700대를 팔았다. 10년 전보다도 적다. 한국에선 왜 수입차가 안 팔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10년간 고민했다. 한국차의 성능이 수입차보다 월등해서? 가격 때문에? 한국 소비자의 기호가 워낙 특이해서? 알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인은 정교하게 여러 겹으로 만들어지고 변화무쌍한 비관세 장벽에 있었다. 불투명하고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환경안전규제와 세금 구조, 수입차를 적대시하는 편견. 한국 업체들은 대량 판매를 하니까 제도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지만 외국 회사는 안정적으로 차를 공급할 수가 없다.
그의 성토는 계속됐다. 누가 전 재산을 털어 포드 판매상을 하려고 하겠는가. 미국에는 현대와 기아 딜러가 1300곳 있지만 포드의 한국 딜러는 1곳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1995년과 98년에도 비관세 장벽 시정을 약속했지만 두더지 잡기처럼 계속 장벽이 나타난다. 미국이 모든 외국차에 시장을 열어준 수준으로 한국도 시장을 열어야 한다. 한국은 8% 관세와 모든 비관세 장벽을 즉각 철폐해야 하며, 미국의 관세(2%) 철폐는 한국시장이 수입차에 의미 있고 지속적인 수준으로 열린 이후에 이뤄져야 한다.
결국 미국 자동차 업계가 원하는 것은 한국 국내 제도의 부분 개정이 아니라 한국 자동차 시장을 미국 시장과 똑같은 수준으로 개방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FTA 협상을 이 같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최대이자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음도 이들은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