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아픔 처절한 선율에 담다
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고 백고산 앨범 국내 발매
625전쟁 와중인 1951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열린 교내 연주회. 머리카락이 검은 한 동양인 연구생의 낯설고도 격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당시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였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는 직접 그를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그는 북한에서 특별 연구생으로 초청받아 온 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19301997). 그가 연주한 곡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되는 본조아리랑을 변주한 무반주 아리랑 변주곡이었다.
사후에도 북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백고산의 독주 앨범(신나라)이 발매됐다. 특히 오이스트라흐를 감동시켰던 무반주 아리랑 변주곡은 이 음반 첫머리에 실렸다. 나라 잃은 설움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분단과 동족전쟁으로 고통 받는 민족의 슬픔을 처절한 선율에 담은 이 곡은 지금도 백고산만이 제대로 연주해낼 수 있다는 평을 듣는 그의 대표작이다.
백고산은 오이스트라흐의 제자로서 꾸준히 실력을 키워 195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1978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종신 심사위원을 지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등에 재직하며 북한은 물론 중국, 몽골 등에서 온 유학생들을 길러냈다.
본격적인 작곡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백고산은 서양 악기인 바이올린을 이용해 민족적 선율이 담긴 곡을 창작해 연주하는 것도 즐겼다. 아리랑 변주곡 외에 민요를 바탕으로 한 민요를 주제로 한 소품이 그것. 이번 음반에는 이 밖에 고향길 환희 용광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등 창작곡이 수록됐고 그의 친필이 담긴 악보사진도 음반 표지에 실렸다. 이 음반은 일본 신세계 레코드사에서 오픈 릴(오디오 테이프가 밖으로 노출돼 감겨진 릴) 형태로 보유하고 있던 북한의 음악 중 백고산의 연주 음원만을 재정리해서 만든 것이다.
北韩最负盛名的小提琴手白高山唱片在国内发售
在6.25战争如火如荼的1951年,在俄罗斯莫斯科柴可夫斯基音乐学院举行了校内演奏会。当一名黑头发的东方人演奏一首既陌生又富有激情的曲子后,当时在柴可夫斯基音乐学院执教的世界著名小提琴手大卫·奥伊斯特拉赫(1908∼1974年)自告奋勇要收他为徒。他就是以特别研究生的身份受到邀请的小提琴手白高山(1930∼1997年)。他的演奏曲目是以“阿里郎阿里郎阿拉里呦~”开头的无伴奏《阿里郎变奏曲》。
即使在他死后,他仍是北韩最一流的小提琴手。最近,白高山的独奏唱片(Xinnala)在国内开始发售。打动奥伊斯特拉赫的无伴奏《阿里郎变奏曲》被放在唱片首位。白高山用凄凉的旋律传达了还没来得及淡忘丧国之痛,就因分裂和同族战争再次陷入痛苦之中的民族的悲伤。有评价认为,这首曲子只有白高山才能演奏出其真正韵味,可以说是他的代表作。
白高山拜奥伊斯特拉赫为师,努力提高实力。1957年,他在俄罗斯莫斯科举行的第一届柴可夫斯基国际音乐大赛中荣获大奖,1978年被委任为柴可夫斯基音乐大赛小提琴部门的评审,终身担任评审。生前,他在平壤音乐舞蹈大学执教,不但为北韩培养音乐人才,而且还收中国、蒙古留学生为徒。
虽然不是作曲家,但他喜欢用西方乐器小提琴创作具有民族旋律的曲子演奏。除《阿里郎变奏曲》以外,他还根据民谣制作了《以民谣为主题的短曲》。除此之外,在他的唱片中还收录了《故乡的路》、《欢喜》、《在能看见鼓风炉的海边》等他创作的曲子。唱片封皮上印上了由他亲自制作的乐谱照片。该唱片由日本新世界唱片公司发行。新世界唱片公司把以“reel to reel”(卷带式)方式保管的北韩音乐中的白高山演奏曲子进行整理,推出了该唱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