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끌더라도 결국은 발효
한국과 미국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했다. 하지만 서명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29일 미 민주당 지도부는 한미 FTA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의회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 민주당이 제동을 걸고 나선 데다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 국회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양국 의회에서 FTA의 연내 비준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그동안 미 의회가 FTA를 부결시킨 사례가 없고, 한미 양국의 경제 전문가들이 이익의 균형을 적절히 찾은 협상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린 점에 비춰볼 때 설령 12년 시간을 끌더라도 결국은 FTA가 발효될 것이라는 게 양국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민주당의 반대=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찰스 랭걸 세입위원장, 샌더 레빈 무역소위원장 등 민주당 핵심지도부 4명은 통상정책에 대한 특별 성명을 통해 한미 FTA는 지금 내용대로라면 동의해 줄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들은 미국에 대한 경제적 충격이 큰 2005년 중미 FTA 때도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들은 반면 페루, 파나마와의 FTA에 대해선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자동차 문제를 집중 제기한 민주당 지도부의 성명은 핵심지지 기반인 노조, 특히 강력한 전미자동차노조의 일자리 보호 및 대선을 1년 앞둔 정치공세를 의식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가운데 자동차 시장개방 협상 결과에 대한 민주당 및 자동차업계의 불만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한국이 연간 70만 대를 수출하지만, 한국의 미국 차 수입은 연 5000대에 머물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민주당 예비선거도 민주당 유력정치인을 선명성 부각으로 몰아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지난달 자동차 산업중심지인 디트로이트에서의 연설에서 한미 FTA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연내 비준 먹구름=김종훈 협상 수석대표는 서명식후 가진 워싱턴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백악관은 (비준동의를 받을 수 있는) 표를 확보했다고 자신할 때까지 표 계산을 치밀하게 한 뒤 의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악관이 그런 표 계산을 올가을께 처음 할 것으로 예상되며 표가 되면 의회에 이를 제출할 것이고, 안 되면 시간을 더 두고 의원들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비준까지 1년 반 정도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한국 국내 정치 지형도 변수다. 정부는 9월 임시 국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심의와 본회의 표결을 거쳐 연내에 비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FTA 반대 비상시국회의 소속 국회의원 64명이 정기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연내 비준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18대 국회로 비준 동의안이 넘어가면 상임위원회 구성 등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국회 비준동의안 통과는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정치 일정도 변수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달 페루, 파나마와의 FTA를 먼저 처리한 뒤 까다로운 한미 FTA와 콜롬비아 FTA를 논의하겠다고 결정했다.
내년 2월부터는 미국도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어서 연내 처리가 바람직하지만 일정상 매우 빡빡한 실정이다. 의회규정상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는 10월 1일 이후가 될 공산이 크다.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평가서를 제출하는 시한이 서명 후 90일 이내, 즉 9월 말이므로 비준동의안은 그 이후에 제출된다.
비준동의안이 제출되면 상하원 상임위가 최대 45일간 동의안을 심의하게 된다. 그러나 달력 기준이 아닌 회기일 기준이어서 추수감사절 등 각종 휴회를 감안하면 회기일 기준 45일은 달력상의 날짜보다 훨씬 길어진다. 게다가 FTA에 이해관계가 걸린 각 상임위에선 청문회 요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이나 미 의회는 8월 한 달 사실상 휴회하기 때문에 미 의회의 처리는 지연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