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荒唐》
《어처구니》- 이덕규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마늘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겨울 속치마 벗기듯 확 걷어버렸는데요
거기, 아주 예민한 노란 마늘 싹들이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네요
나도 모르게 그걸 살짝 건드려보고는
갑자기 손끝이 후끈거려서
또 그 옆, 어떤 싹눈에 오롯이 맺혀 있는
물방울을 두근두근 만져보려는데요
세상에나! 맑고 깨끗해서
속이 환히 다 비치는 그 물방울이요
내 손가락 끝이 닿기도 전에 그냥 와락,
단번에 앵겨붙는 거였습니다
근데요, 이를 또 어쩌지요
손가락이, 손가락이 굽어지질 않는거였죠.
- 이덕규 <어처구니>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