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기담
제자와 선생이 모여 앉아 키스내기 화투를 한 것이 잘한 노릇이란 말이냐? 너의 학교 교장이란 자가 에 취해키스하고키스하고에 취해.(1934년 별건곤 4월호에 실린 이아부의 유머소설 키스내기 화투 중에서)
해괴한 화투치기는 소설가의 상상이 아니라 실화였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은 당시 여제자들과 키스내기 화투를 치다가 정조를 유린했다는 대형 성추행 스캔들에 휘말렸다.
33인 중 가장 추악하게 타락한 박희도의 친일 행적은 이후 밝혀졌지만 당시 조선을 뒤흔든 여제자 정조 유린사건을 제대로 기록한 역사책은 없다. 저자는 인문학에서는 친일보다 성추행이 더 큰 금기였다고 말한다.
스캔들과 살인사건만큼 개인과 사회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센세이셔널한 근대의 풍속사라 할 만하다. 국문학자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인 저자는 인문학은 사생활을 감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명사들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살인사건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맡게 해 준다.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에 10여 차례 보도됐으나 역사책에서는 한 줄 이상 기록되지 않은 살인사건 4건과 스캔들 6건이 이 책에 묶였다. 사실을 추상화하는 분석 없이 쉽게 쓰여서 술술 읽힌다.
책에 실린 사건들은 일제강점기가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으로 쉽게 설명될 만큼 단순하고 건조한 시기가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빚을 져 가면서까지 흥청망청했던 타락한 귀족들과 경성의 후미진 곳에 암매장되는 사체들, 미신과 무지로 목숨을 잃던 하층민과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이 동시에 존재하던 시대의 풍경을 꼼꼼하게 복원했다.
사료와 해석을 경계가 희미하게 뒤섞어 놓은 이 책의 장점은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풍경이 지금 들어도 별로 낯설지 않다는, 이야기의 현재성에 있다.
1937년 사이비 종교 교주가 100여 명을 몰살한 백백교 사건은 한때 떠들썩하던 오대양 사건을 환기시킨다. 재산은 300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돈을 물 쓰듯 했던 순종의 장인 윤택영 후작은 몇 년 전 재산이 30만 원도 되지 않는다고 신고한 전직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든다.
1931년 부산에서는 일본인 주부가 자신의 불륜 현장을 목격한 조선인 하녀를 정부를 시켜 살해했는데도 피의자들이 모두 무죄로 풀려나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피해자만 있고 피의자는 없는 사건, 범죄의 사실관계조차 권력에 의해 왜곡되는 양상은 요즘도 되풀이되는 풍경이 아니던가. 이 책에 실린 이야기의 현재성은 사람살이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시대를 초월한 현재성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대목은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신여성 최영숙의 비극적 생애에서다.
인도 청년을 사랑해 혼혈 사생아를 임신한 채 돌아왔고 어느 직장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 콩나물 장사를 해야 했던 그녀는 27세에 요절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이방인을 사랑했으며 혼혈아를 임신했던 그녀의 비극을 보며, 저자는 미식축구의 영웅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가 한국에 왔더라면 거지밖에 안 됐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떠올린다. 최영숙이 수십 년 늦게 태어났더라도 조국에서 환대받을 수 있었을까.
저자가 들춰내는 명사들의 허물 많은 사생활을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조선의 탁월한 음악가는 병든 아내를 버려둔 채 제자와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였다. 야심가들이 위대한 이상을 위해 가장 손쉽게 희생하는 것은 가정과 인격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사랑도 역시나 비루한 일상을 피해가진 못했다. 책을 덮을 즈음이면 기담이 더는 기이하지 않다.
“学生和老师聚坐在一起玩亲吻花图是好事情吗?你校的校长自己……陶醉于……亲吻……亲吻……陶醉于……”(1934年《别乾坤》[音译]4月号中登载的雅夫[音译]的幽默小说《亲吻花图》[音译]中的句子)
稀奇古怪的花图不是小说家的想象,而是真实的故事。3·1运动33名民族代表之一、中央保育学校校长朴熙道因当时和女学生玩亲吻花图,而被卷入践踏情操的大型性猥亵丑闻中。
33人中最堕落的朴熙道的亲日行径后来被查明,但正确记录当时震惊朝鲜的“践踏女学生情操事件”的历史书却不存在。作者说:“人文学中,‘性猥亵’是比‘亲日’更大的禁忌。”
还有像丑闻和杀人事件那样赤裸裸地揭露个人和社会本质的事情吗?该书堪称令人感动的近代风俗史。作为国文学者,身为韩国科学技术院教授的作者怀着“人文学不能掩盖私生活”的态度,揭露了知名人士的私生活,并通过杀人事件使人闻到了时代的气息。
日本帝国主义侵略时期的报纸和杂志中曾报道过10多次,但历史书中记述不到一行的4个杀人事件和6个丑闻都汇集在该书中。书中没有使事实抽象化的分析,写得非常通俗易懂,可以流畅地阅读。
书中记载的“事件”通过亲日和反日的二分法通俗地解释了日本帝国主义侵略时期,从而表现出这并不是单纯、枯燥的猜测。在背负债务的同时还穷奢极欲的堕落贵族、被秘密埋葬在京城僻静地的尸体、因迷信和物质丢掉性命的下层人民、走在时代前列的新女性,作者一丝不苟地复原了这些人物曾经同时存在的时代风景。
该书将史料和解析界限模糊地掺杂在一起,它的优点在于,日本帝国主义侵略时期黑暗的“风景”即使到了现在也不陌生,具有故事的现在性。
1937年,冒牌宗教教主杀害100多人的白白教事件唤起了一度满城风雨的五大洋事件。主张“财产只有300万韩元”的同时还花钱如流水的纯商人尹泽荣侯爵使人联想起几年前申告自己的财产只有30万韩元的前任总统。
1931年,日本主妇在釜山被朝鲜人下女亲眼目睹了偷情场面,因此让其情夫将下女杀害,但嫌疑犯却全部被无罪释放,成为永远的未了事件。只有受害人没有嫌疑犯的案件、连犯罪的事实关系都依靠权力歪曲的情况不是最近也在重现的“风景”吗?该书中记载的故事之所以存在现在性可能是因为无论当时还是现在,人们的生活并没有大的不同。
1931年,新女性郑英淑从瑞典斯德哥尔摩大学毕业回国。她的悲剧人生也反映了超前时代的现实性。
爱上印度青年的郑英淑回国时已怀着混血私生子。结果,没有一家公司要她。她只能以卖豆芽维生。她以27岁的年龄告别人世。看着她超前于时代爱上外国人,并怀上混血儿的悲剧,作者不禁想起橄榄球英雄沃德的母亲说的话:“如果我来到韩国,可能早已成为乞丐。”如果郑英淑晚生数十年,会不会在祖国受到应有的待遇……
在阅读作者罗列的名人私生活的过程中,深刻感受到无论是现在还是过去人类是多么复杂的存在。朝鲜一位著名音乐家抛弃生病的妻子,与女弟子私奔。野心家们为了实现伟大的理想,“最轻意牺牲的是家庭和人格”。但这“伟大的爱情”也不能逃避平凡的日常生活。合上书本时,对“奇谈”再也不感到奇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