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한 잔에 기개 세우고 두 잔에 마음을 씻다
곡우절의 맑은 날, 해차가 새 잎을 내밀 즈음이면 두륜산의 햇살은 머루 빛깔을 닮아간다. 그 두륜산 기슭 일지암에는 훗날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수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야생 차밭이 산재한 이곳에서 초의는 한 잔의 차를 통해 법희선열을 맛보며 다선일미의 경지로 나아갔다. 초의의 차 만드는 솜씨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추사 김정희는 이런 걸명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어느 겨를에 해차를 천리마의 꼬리에 달아서 다다르게 할 텐가. 만약 그대의 게으름 탓이라면 마조의 고함과 덕산의 방망이로 그 버릇을 응징하여 그 근원을 징계할 터이니 깊이깊이 삼가게나.
이 책에는 고운 최치원에서 춘원 이광수에 이르는 우리 역사 속의 다인 50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차 마시는 우리 조상들의 향기로운 역사이자, 차의 성품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기다. 저자는 차를 기른 땅과 비와 햇살과 바람의 인연을 고마워하며 한반도 그 어디에도 차향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한다.
차나무와 선가의 인연은 깊다. 조주에서 발원한 승가의 다맥은 신라 때 철감선사에 의해 해동으로 건너와 고려 때는 보조국사와 진각국사가, 조선 때는 함허선사와 사명대사에 이어 초의선사가 중흥시켰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차 한 잔의 의미는 선가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는다. 차 문화는 선승들의 수행 방편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정점에 자리한 그물코 같은 유산이었다.
최치원 이자현 김시습 허균은 차의 청허함을 어찌 세상이 알겠는가 하여 은둔했고, 김종직 이목 기대승 김장생 이이 송시열 윤선도는 차를 군자처럼 가까이했다. 양팽손 김정희 허백련은 차와 함께 서화잠심했고, 신숙주와 이광수는 차 한 잔에 세월의 영욕을 띄웠다.
고려 왕조의 지조를 지켰던 삼은이 모두 다인이었던 것도 흥미롭다. 사철 푸른 차나무는 굳이 척박한 땅을 골라 자란다. 뿌리가 곧게 뻗는 직근의 성품을 지녀 옮겨 심으면 쉬 죽고 만다고 했으니, 그것은 선비의 꼿꼿한 기개였던가.
谷雨节天气晴朗的日子,当茶树长出绿叶时,头轮山的阳光呈葡萄色。在位于头轮山山脚的一枝庵中,住着一位被后人尊称为茶圣的草衣禅师。
附近分布着大小不等的野生茶田。草衣从一杯茶中领悟出“法喜残悦”的意境,并进一步发展到茶禅一味的境地。由于草衣煮茶的技术太出众,秋史金正喜曾写了一封乞茗信。信中说:“究竟要到什么时候才把新茶绑在千里马的尾巴上送过来。如果是因为你的懒惰,我将用马祖的怒吼和德山的木棒给予惩戒。千万不要掉以轻心。”
这本书从孤云崔致远到春园李光洙讲述了我国历史中的50名茶人的故事。既是喜欢喝茶的我国祖先茶香四溢的历史,又是探索人品如茶一样高尚的人的足迹的旅行记。作者对养茶的土地和雨水以及阳光、风流露出浓厚的感情。他说:“在韩半岛任何一个地方都能闻到茶香。”
茶树和禅宗的缘分可以追溯到很久。从赵州起源的僧伽的茶脉在新罗时期被澈监禅师移到海东,并经历高丽时期的普照国师和真觉国师以及朝鲜时期的涵虚禅师和泗溟大师之手,最终在草衣禅师的手里中兴。
但在我国历史上一杯茶所含的意义远远超出了禅宗的范围。茶不仅是禅师修行的忠实伙伴,而且还是像位于韩国文化中心的刺绣一样的遗产。
崔致远、李姿玄、金时习、许筠因感叹世人不知茶的清虚而隐居。金宗植、李穆、奇大升、金长生、李珥、宋时烈、尹善道把茶视如君子。梁彭孙、金正喜、许百炼喝着茶“潜心研究书画”。申叔舟和李光洙用一杯茶决定了一生的荣辱。
高丽时期的“三隐”都是茶人。这一点非常有趣。四季常青的茶树选在贫瘠的土地上成长。如果把茶树的“直根”移植过来,容易枯死。这不正是儒生威武不屈的气概吗?